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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육 (그 쾌락을 즐길 수만 있다면…) 5화

무료소설 완전한 사육: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완전한 사육 (그 쾌락을 즐길 수만 있다면…) 5화

 

그때 갑자기 유현지가 현기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영 씨,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아요. 나, 불쾌해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요.”

 

그러더니 얼굴을 굳히며 벌떡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가버렸다. 아연해서 유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기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성진을 보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나는 술이 들어가면 딴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져. 지나쳤다면 용서해라.”

 

“뭘, 아냐! 어차피 나는 빈대인 걸 뭐.”

 

마성진은 단숨에 맥주를 비웠다.

 

“그런데 저 아가씨는 네 약혼녀냐?”

 

“응, 약혼식 때 너도 초대해 주지.”

 

부잣집 외동아들과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동생이라면 아주 어울리는 부부가 되지 않겠냐고 마성진이 짐짓 맞장구를 쳐 보이자, 현기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 아가씨의 언니 되는 사람의 스캔들이 문제야. 우리 부모님이 꽤 신경 쓰이는 눈치더라고.”

 

“아아, 연하의 남자와 어쨌다는……”

 

“야야, 그저 몇 살 연하면 내가 말도 안 하지.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나잖아.”

 

현기영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유예지는 현재 갓 스물이 넘은 학생을 집에 기숙시키며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것이 여성지 기자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 학생 - 이름이 김경철이라고 했다 은 출신이 확실하지 않았다. 여성지의 보도에 의하면 그의 피아노 스승과 룸살롱 여종업원 사이에 생긴 자식이라고 했다. 피아노 스승의 간청에 의해 자신의 집에 기숙을 시키기 시작했다는데, 어쨌든 문제가 된 것은 심야에 유예지와 그 학생이 손을 잡고 귀가하는 모습을 한 여성지가 잡은 것이다. 그것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유예지를 김경철이 껴안듯이 감싸고 있는 광경으로, ‘유예지에게 너무 젊은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또 다른 잡지에서는 택시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유예지와 김경철의 사진입수에 성공, 대문짝만하게 그 사진을 실었다.

 

‘너무 젊은 연인’이라는 표현 그대로 김경철은 20세의 잘생긴 청년으로 여자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단아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유예지가 정감있는 계란형 얼굴에다 기품있는 미망인인 만큼 텔레비전 등에서 전문가까지 등장하여 그들의 관계를 여러 측면으로 억측하고나 추리하여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언젠가 유예지의 공연장으로 몰려온 기자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유예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김경철과 자신 사이에 그런 불륜 관계는 절대로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런 지저분한 상상을 기재하거나 방송하는 매스컴 관계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 청년을 집에서 내보내는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는 어느 여기자의 질문에 대해 유예지는 쓸데없는 친절이군요, 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아무래도 현지의 언니와 그 소년의 관계는 사실인 것 같아. 현지도 그 일로 가슴 아파 할 때가 있거든. 하긴, 뭐 그런 일은 나와 현지에게 별로 관계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마성진은 그저 그렇지, 하고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빨리 결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환경에 그녀를 둔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마성진은 어쨌건 너희들의 행복을 빌어주마, 하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유현지의 언니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든가, 그 동생이 머리가 텅 빈 부잣집 아들과 결혼한다던가 하는 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성진은 아까부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벌써 가려고?”

 

“그래, 술 잘 마시고 간다.”

 

다음엔 둘이서만 만나라, 이 새끼야,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린 마성진은 다시 고양이 등이 되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마성진 씨.”

 

마성진이 막 엘리베이트를 타려고 하는데 뒤에서 유현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뺨을 가볍게 떨면서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기영 씨가 말을 너무 함부로 했죠.”

 

“아뇨, 괜찮습니다.”

 

마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러더니 유현지는 고급스런 가죽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마성진의 주머니의 밀어넣었다.

 

“실레인 줄은 압니다만, 차비나 하세요.”

 

그녀는 마성진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보이고 카페 쪽으로 돌아섰다.

 

며칠 동안 마성진은 유현지가 준 수표로 기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밤이 되면 집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한 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이불을 쓰고 누우면 그날 밤 유현지의 서정적인 눈동자, 우아한 볼, 그리고 꽃무늬 자수가 든 순백의 원피스- 그런 것들이 불건강하고 나태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마성진의 뇌리에 환각처럼 떠올랐다.

 

그날 밤 유현지에게 돈을 받은 것이 결코 치욕스럽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저 심성치 착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결박된 누드 걸의 얼굴에 유현지의 얼굴이 겹쳐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기품있고 아름다운 유현지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체가 되어 아름다운 볼을 수치심으로 빨갛게 물들이면서 꽁꽁 묶인 채 신음하며 흐느낀다 -

 

그런 유현지의 자태가 열병처럼 마성진의 공상 속에 뜨겁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상의 즐거움 속에서 마성진은 무의식 속에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다.

 

다음주 일요일, 마성진은 여행가방 한 개를 들고 서울역에 서있었다. 음습한 서울 생활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낙향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심신이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마성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역구내의 군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화려한 광경이 마성진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무슨 행사라도 끝나고 사람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아니, 배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화려한 정장 차림의 아가씨들이 한 무리가 되어 즐겁게 담소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한층 더 눈에 띄도록 아름다운 아가씨-화사한 주홍빛 바탕에 하얀 소국이 흩어진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유현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성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빛이 나듯 아름다운 유현지의 투명한 옆얼굴을 마성진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만지면서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이것이 정녕 아름다움이라는 것인가? 아, 이렇게 손도 닿지 못할 미를 무참하게 찢어발길 수 있다면……!

 

마성진은 예의 공상에 빠져들다가 발작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을 생각해 냈다.

 

공상을 현실로 실현시켜 보는 것이다! 마성진은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런 꿈 같은 일이 가능할까, 하며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마성진의 갈팡질팡은 계속되었다. 저 높은 산의 꽃을 가루가 되도록 짓이긴다…… 그런 범죄를 생각하다니 내가 미쳤군.

 

그러나 이대로 살아봤자 쾌락의 그림자도 잡을 수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내 인생에 무슨 미련이라도 남았는가?

 

순간, 뇌리를 강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오랫동안 원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쾌락, 극히 일순이라도 좋다. 그 쾌락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생명 따위는 누구에게라도 줘 버릴 수 있다! 마성진의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의 무리가 택시승강장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이미 마음을 결정한 마성진은 유현지의 옆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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