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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학교 (신체 포기 각서) 1화

무료소설 노예 학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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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노예 학교 (신체 포기 각서) 1화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선하는 이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멍청하게 쇠창살을 잡은 채로 바깥을 내다봤지만, 밖에서도 안에서도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시대를 바꾸겠다는 법관 출신의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 선하에게는 아직 투표권이 없었다. 선하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세금만 축내고 있는 사형수들의 형 집행을 당장 진행한다느니, 법을 엄격하게 강화하겠다느니, 밤길이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다느니…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새 대통령의 정책을, 이전까지 선하는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세상은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사형이 떨어지지 않을 문제에도 사형이 선고되었고, 형을 집행하지 않고 늙어 죽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사형이 확정되면 늦어도 1년 내로 사형수는 죽었다. 일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긴 했지만… 분명 치안은 바로잡혔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사소한 일에도 범법을 저지르지 않게 조심했고, 강화된 법률에 반발하여 미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무거운 벌금을 받거나 구금되었다. 뭐, 이전부터도 착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다 좋은 일이었다.

“난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이선하. 21살.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선하 본인이 사형을 선고받고 갇히게 되지만 않았어도 다 저 먼 세상의 일이고, 남의 일이었다. 오히려 밤길이 덜 무서워서 행복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선하의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의 어느 날부터였다. 그날 집에 불이 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선하는 그 전날 사소한 일로 부모님과 다투고 삐져서 근처 만화 카페에 갔다.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와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불탄 집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부부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그대로 주저앉은 선하의 손목에 기다렸다는 듯 수갑이 채워졌다. 방화와 살인은 강력범죄다. 법이 강화된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범인은 잡아야 한다.

‘…난 죽는 건가? 1년 내로…….’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스템을 실제 겪어 보니 정말 기가 막혔다. 범인을 꼭 잡아야 하는 경찰들은 물론이고, 검사도, 변호사도 선하가 아무리 무죄라고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방화에 살인, 그것도 존속살인. 그것이 선화의 죄명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한테 화내지 말걸. 아빠한테도…….’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찔끔찔끔 흘렀다.

죄질이 악랄하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며 증거가 명확한데도 발뺌만 하고 있다. 그게 선하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한 말이었다.

‘이대로 죽으면 엄마한테 꼭 미안하다고 해야지…….’

지난번에 받았던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정말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그러나 이웃에게는 ‘그 직전에 부모님과 싸웠다.’ 라는 증언이 되었고, 선하가 갔던 만화 카페 주인은 선하를 기억하지 못했다. 손님 중 한 명이 선하를 기억하긴 했지만… 선하는 어차피 아침에 돌아왔다. 알리바이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현금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카드도 안 썼으니 명확한 출입 시간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너무 억울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가장 슬픈 건 나란 말이야.’

선하는 무릎을 끌어안고 또 훌쩍훌쩍 울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사형수가 되어서 그런지, 같은 방에 있는 다른 죄수들도 굳이 선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법이 강화되었다. 늦어도 1년, 빠르면 한 달 내로도 선하는 죽을 것이다.

‘엄마…….’

경찰에 끌려가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선하는 고민했다. 나는 정말 안 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선하가 보기에는 이건 사건이 아니라 사고였다. 침입 흔적도 없고, 없어진 금품도 없다. 그러니까 선하가 뒤집어쓴 거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면회를 올 사람도 없는 선하에게 ‘면회’는 곧 사형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있었지만… 간만에 강력범죄치고도 큰 사건이라 그런지 뉴스로까지 다뤄진 선하를 이런 시국에 찾아오긴 힘들 것이다. 친구들의 기분도 이해는 갔다. 그리고 그 ‘면회’가 들어온 건 하필이면 한 달이 지난 뒤였다.

“…저기요, 전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진짜…….”

안 가고 버티려는 선하를 간수들은 아무 말 없이 끌고 갔다. 좀 더 발악해 볼까 싶었지만 다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마음껏 통곡이라도 할까 싶어서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하는데, 진짜 면회였는지 사형장 쪽으로 돌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면회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긴 하지만… 선하는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다. 거긴 면회실이 아니고 소위 ‘징벌방’ 이라고 불리는 독실 같았다.

“…누구… 흑… 누구세요? 변호사? 기자…?”

선하는 수갑을 찬 채로 여자와 단둘이 갇혔다. 올 사람이라고는 변호사나 기자밖에 없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여자는 변호사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기자 같지도 않았다. 여자가 입고 있는 건 어딘가의 제복 같기는 한데 처음 보는 옷이었다. 묘하게 노출이 심하고, 가슴골이 언뜻언뜻 보이고, 치마도 너무 짧은 게… 코스프레 술집인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요. 우선 앉으세요.”

테이블도 하나 없이 좁은 방에 갇혀서 앉으라니… 선하는 황당했지만 주춤주춤 바닥에 앉았다. 여자는 미인이었다. 생김생김이 화려한 것은 아닌데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타입. 몸매도 꽤 좋았다. 한쪽으로 모은 다리의 각선미가 눈부실 정도였다.

“이선하 씨죠…? 죄명은 존속살인, 방화.”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어차피 소용없겠지만… 선하는 힘없이 수십, 수백 번 했던 말을 반복했다.

“훗… 뭐, 사형수들은 다 그렇게 말하니까요.”

선하는 속이 상했다. 여자의 비웃는 듯 올라가는 입술은 예뻤다. 이 여자는 대체 뭘까?

“김유정이에요. 29살. 3년 전에 사형 선고를 받았죠. 죄명은 사기. 보험금 살인.”

선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3년 전이라니… 이 여자는 어떻게 살아 있지?

“결혼 사기를 치고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남편이 알게 되고, 사람을 죽이고. 저도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다 남편이 했지.”

…놀리는 건가? 선하는 볼이 부은 표정을 지었지만 막 대들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죄수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하는 얘기도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기자들이 얼마나 많이 접근해서 제멋대로 기사를 썼던가. 대꾸하지 않는 게 가장 무난한 방법이었다.

“뭐, 그건 중요한 건 아니고. 어때요, 선하 씨. 살고 싶나요?”

“……그야.”

“국민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선하 씨처럼 어리고, 갱생의 여지가 있는 사형수고, 유해를 확인할 가족도 없는 경우엔 말이죠.”

사실 그때 유정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하는 아직 어렸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꿈도 있었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제대로 조사해줄 경찰이 나타날 수도 있고, 무죄가 증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죽어 버린다면… 언젠가 진실이 밝혀져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잃은 미래도 아깝고, 우선 너무 억울했다.

“사형수 재교육 기관이 있어요. 어때요, 공식적으로는 사형을 집행한 걸로 되겠지만. 살고 싶다면.”

“…저, 정말요?”

“후훗…….”

유정의 미소는 비릿했다. 21살의 선하. 가느다란 허리에 봉긋한 가슴. 죄수복을 입고 있어도 청순하고 빛나는 외모. 이런 국가 분위기에 대놓고 떠들 수는 없었지만… 선하의 처연한 표정에 진짜 무죄일지도 모른다, 알려지지 않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꽤 있을 것이다.

유정도 선하의 사진을 신문에서 처음 봤을 때 명화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다가 겁탈까지 당한 뒤, 아버지를 죽인 딸… 베아트리체의 사형 직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유정으로서는 멍청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선하는 극구 부인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나.

유정은 선하의 작은 어깨를 살그머니 쓰다듬었다.

“이선하 씨, 무슨 달콤한 생각을 하는 거죠? 재교육이라는 게…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한 재교육인 줄 알아요? 참고로 말하자면… 거기 갔다가 그냥 사형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100명 중에 80명이에요.”

“네……?”

“물론, 교육 중에 죽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래요, 십 년 이상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100명에 한 명? 1000명에 한 명?”

“…….”

“죽는 대신, 성노예가 되는 거예요. 하루에 수십 명의 남자를 상대하기도 하고, 입에 담을 수도 없을 더러운 고문도 당하고… 어차피 거기 가는 순간 당신은 죽은 사람이니까.”

유정은 선하의 봉긋한 가슴을 살짝 쓰다듬었다. 기겁한 선하가 뒤로 물러났지만, 여긴 도망갈 곳도 없다.

“그리고 다신 사회로 나올 수 없어요. 어때요? 그래도 살고 싶으면 각서를 쓰세요. ‘신체 포기 각서’를…….”

“새, 생각, 생각해 볼…….”

“어머나, 이런 얘기를 듣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있는 감방으로 다시 돌려보낼 줄 알아요? 웃기지 말아요. 각서 안 쓰면 당신은 이대로…….”

유정은 보란 듯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선하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사형, 이에요. 이선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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